발레와댄서

세레나데/봄의 제전 (테틀리 안무/아오안)
4월 30일 6시 LG 아트 센터
국립발레단
김지영/박예은/?
녹음 반주 (망할망할망할)


우연인지, 인연인지 국발에 데이고 나서 도로 붙든 게 예전에도 발란신이었군.
첫 발란신(영상 말고 공연)은 2006년 10월 28일 국발의 Symphony in C. 그리고 우연찮게도 그 때도 국발 돈큐에 된통 데이고 나서 갈까 말까 망설이다 갔었음.
5월이었나, 돈큐 인상에 남아 있던 건 막이 오르자마자 무대위에서 온통 펄럭이던 운동회 매스게임에나 쓸 법한 형형색색의 부채(지금도 가끔 꿈에 보여서 질겁). 혼자 날아가던 음악.
(...개정 의상도 이 꼴이 날 줄은 그 때는 몰랐다 ㅜ.ㅜ)
그 뒤 국발 공연 관둘까 하다가 발레 보기 시작한지 1년 넘기기 시작하던 시기였더라, 마침 관심 가기 시작하던 에크랑 발란신이 동시에 올라오는 프로그램 보고 결국 밑져야 본전이란 식으로 갔었는데, 처음 보는 발란신은 어쨌든 예쁘고 우아했다는 인상은 받았던 데다가, 3악장 메인 롤을 맡았던 전효정 씨의 춤이 정말 좋았다.

+ 의식 못했는데, 나 전효정 씨 나오던 무대 볼 때마다 죄다 메모 남겨놨네. 그러고도 사람 얼굴&이름 못 외우는 덕에 계속 같은 무용수 기록하는 건 나중에 깨달음.

그래도 발란신에 대해서 특별히 의식하진 않았다. 그냥 괜찮네 정도로 넘어갔는데...다음해에 최대의 병크와 조우.
근처에서 모 국립대 교수가 예술감독을 맡은 발레단 공연 - 이라고 쓰고 제자들 주축으로 한 발표회 -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됬다.
발란신의 세레나데 + 교수의 창작 더블 빌 구성.
수준 기대 안 하고 분위기나 살렸길 기대하면서 갔는데 정말 처참했음. 본인 창작 작품은 이대에서 무용수 초빙하고 군무 맞추려고 신경 쓴 티가 나더만, 세레나데는 구색 맞추기였다.
음악 따로, 군무는 각자 따로, 심지어 안무는 멋대로 뜯어 고쳐 놨다. 그럴 거면 차라리 발란신 이라는 이름을 떼던가 (당연히 저작권은 무시였을 거고) 티켓은 버젓이 일반 판매 한다고 써놨는데 가서 티켓 달라고 하니까 티켓 카운터 지키던 학생들이 급 당황. 일반 관객은 올 거란 생각도 못했던 거지.
그 공연 보고 나서 트라우마가 될 지경이었다. 발란신이 원래 저럴 리가 없어!! 라면서 세레나데 관련 자료와 영상을 미친듯이 찾기 시작.
....그리고 그게 발란신 덕질로 이어졌다 ㅎㅎㅎㅎ;;

좋은 무대 보고 덕질 시작한 적은 있지만, 망한 무대 보고 덕질 시작한 건 전무후무. 그렇다고 고맙다는 생각은 저어어얼대 안 듬.
고맙기는 커녕 어떤 영상을 봐도 뇌세척이 안 되서 미치는 줄 알았다. 공연을 보고 싶었는데, 런던 시즌에서만 휴가랑 일주일도 안 되는 차이로 마린스키, 볼쇼이 다 못 보고, 뉴욕시티는 일본에서 평일 공연이어서 못 보고, 뉴욕에선 역시 스케줄 안 맞고 근 9년여 동안 정말 스케줄 맞추는 데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다 약올리듯이 일주일 안 쪽으로 스케줄 어긋나...orz.
이번에 국발 괜찮겠냐고 걱정해준 모 님께, 어떤 병크가 터지더라도 이번엔 가야겠다고, 아님 평생 제대로 된 세레나데는 못 보는 징크스 생길 거 같다고 선언하고 나름 비장한 각오로 상경했는데... 진짜 어제 올라가길 잘했다.
ㅜ.ㅜ 이제야 악몽을 뇌에서 싹싹 지울 수 있을 거 같다.
물론 실수라던가, 녹음이라던가(망할) 맘에 안 드는 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기합 빡 들어가 있던 군무진들과, 중심 축 잡아줬던 솔리스트들한테 박수를.

흔히 자주 인용되는 문구 중, 발란신의 작품을 두고 '보는 음악, 듣는 무용' 이라는 표현이 있음. 그만큼 음악성이 중요시하고, 음악을 시각화 시키는데 도 튼 양반.
세레나데도 물론 해당되지만, 동시에 이 작품은 발란신의 작품 중에서도 특이점에 해당.

20대 야심만만하고 (돈 많은) 무용 애호가였던 링컨 커스틴의 초청을 받아서 1933년데 미국으로 오긴 했는데, 유럽만큼 준비된 수준의 발레 댄서 찾기 힘든 땅이었던 터라, 학교부터 설립. 1934년 개교한 School of American.

그리고 첫 생도들이 바로 세레나데의 주인공들. 개중에는 브로드웨이나, 쇼 경험있던 학생들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발레 무대 경험은 전무(당연한가).

이제 막공까지 끝났을테니, 맘껏 스포성 내용도 써볼란다 ㅋㅋㅋㅋ 발란신이 보통은 자기 작품 내러티브에 대해서 그냥 음악에 맡기셈. 나 거까지 깊게 생각 안 했음... 이라고 했지만, 세레나데에 대해선 주변인들에게 속 꺼내 보인 적이 있음.

1. 발란신은 가끔 세레나데를 '달빛 아래의 춤' 이라고 언급
2. 세레나데에서 왈츠 걸 추게 된 다닐로바에게 (엘레지에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녀에게 남자를 인도하는 여성(다크 엔젤)이 바로 그의 아내. 남성과 아내는 인생을 함께 걸어나감.

남자는 쓰러져 있는 소녀를 동정했던 것." 다닐로바 왈 "자신은 홀로 남겨진 비천한 소녀" 였다고.
...라고 했는데 여기서 반전. 발란신 말 곧이곧대로 믿음 골룸. ㅋㅋㅋㅋ 포인트는 '다닐로바' 에게 했던 말이라는 것.
1926년부터 33년까지 둘이 동거(결혼까진 안했음)했던 사이. 결국 깨졌지만 발란신의 뒤끝 쩌는 쪼잔한 성격상, 다닐로바에게 일부러 저렇게 말했을 가능성 없지 않음. 내 개인 번역: 니가 날 떠난 게 아니라 내가 너 찬 거야! 빼애액!
+ 저 뒤끝 쩌는 쪼잔함은 지가 채이거나 했을 때 한정이긴 함.
모순 투성이 복잡한 성격인데, 대범하고, 집착 안 할 땐 장난 아니게 오늘만 사는 것 처럼 사는데, 묘한데서(예; 패럴 결혼 문제) 한 번씩 뒤끝 쩜. ㅡㅡ;
뭐, 그런다고 일 안 주는 것도 아니고. 필요할 땐 확실하게 뭐든 다 하고 결과 확실하게 내는 타입이니까, 속으로 꽁해도 다닐로바랑 일하고 그랬겠지만. 결국 패럴도 나중에 복귀했고.
2번은 발란신의 사소한(?) 심술이라 치긴 하는데, 솔직히 님 차일만 했음. 나라도 찼어.
금전 감각 면에서 정말 오늘만 사는 것처럼 살았음.
돈 있으면 있는대로 왕후장상, 없으면 쫄쫄 굶고 '저축'이라던가 노후대비라는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다닐로바가 헤어지기 직전에 빡쳤던 사건이, RDB에서 번 돈으로 난생 처음 근사한 자동차 한 대 사고, 영국에 일이 있어서 페리에 싣고 영국까지 갔다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는데 칼레에서 관세 낼 돈 없고, 그렇다고 보관료 낼 돈 도 없어서, 옆에 있던 생판 남한테 그 차 그대로 선물(!) 했다.
다닐로바는 차 색(녹색)에 맞춰서 곱게 패션까지 맞춰놓고 대기였는데 오자마자 실상 전해 들음. 게다가 런던 선물이랍시고 내 놓은 게 오 드 뜨왈렛(향수).
다닐로바는 성질 꾹 누르고 관대하고 우아하게

"오 드 뚜왈렛이라고? 파리(!)에 사는 나한테? 이렇게 친절할 데가! 밤낮없이 날 생각해 주었군요!"

라고 말 끝나자마자 향수병 발란신 면전에 집어던짐.

1번으로 다시 돌아가서 발란신은 이 작품에 대해서 운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엘레지(다크 엔젤 부분)에 대해서 발란신이 버나드 테이퍼에게 얘기한 적이 있음.

"마치 운명과도 같다네. 사람든 누구나 짊어진 운명에 따라 살아가지. 남자는 여자와 만나서 사랑에 빠지지만, 사실 운명이란 게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거지."
테이퍼(발란신 전기 작가이기도 함) "굉장한데, 거기에 대해 댄서들에게 얘기해 줬나?"
"그런 일, 신이 허락할 리가."

시종, 발란신은 자신의 추상 발레에 구체적인 의미가 있다거나 하는 걸 인정하지 않는 경향. 춤은 춤 그 자체로 아름답다.
라는 건데,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음악에서 내러티브를 찾아내는 건 결국 보는 사람이나 추는 댄서들의 해석에 맞긴 게 아닐까.
사실, 난 무용 감상이라는 게 다른 장르에 비해서 유독 보는 이의 주관이 강하게 개입한다고 생각하는 편.
구체적인 대사가 없는 만큼, 같은 작품이라도 보는 사람의 컨디션이나 사고 방식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는 거고. 비록 자신이 만든 작품이지만 관객과 작품 사이에 자신의 주관이 개입하는 걸 꺼려했을 수도 있을 테고.
평론가들에게 유독 초연했던 것도 니들은 니들대로 보는 거고 나는 나대로 만드는 거고의 연장선? 일지도??
...어디까지나 내 추측.

하여간 세레나데는 발란신 작품 치고는 3악장 엘레지 부분에서 서정성이 유달리 강해서 유독 안무가의 의도나 스토리에 대한 얘기들 많았음.
하지만 메이슨과 공저인 책에서도 세레나데에 대해서 "스토리 없다" 라고 확실히 못 밖고 있는데, 다닐로바한테만 유독 저렇게 일.부.러 귀뜸한 거 보면 ㅋㅋㅋㅋㅋ

세레나데는 기본 테크닉 면에서야 아카데믹 스타일을 지키고 있지만, 수정궁이나 심포니 인 C, 보석과는 성격이 다른 작품이다.
아카데믹 스타일 포함해서 프티파의 황실 발레 계층구조 - 군무, 드미 솔리스트, 솔리스트, 주역과 그 카발리어 - 까지 착실하게 계승. 심포니 인 C만봐도 악장 별로 주역 커플 정해져 있고 주역이 하이라이트임. 보석도 두말 할 거 없고.
사실, 발란신이 만일 당시에 인프라 (극장 + 댄서들) 구축 되어 있던 파리 오페라 맡았다면 저런 작품이 진작에 나왔을텐지만..

1933년의 뉴욕은 그냥 웁시다. ㅜ.ㅜ
학교부터 시작해서 일단 무용수부터 키워내야 했던 상황이라고.
더더군다나, 커스틴을 포함한 몇몇은 미국 발레를 키우자 어쩌고 설레발을 하면서 발란신한테 가져온 대본이 "엉클 톰스 캐빈" 어쩌라고요. orz
뭔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미쿡의 발레라는 게 있을 거야 라는 막연한 느낌적 느낌인데, 거 많이 익숙합니다?
미국식 발레가 어떤지는 몰라도 미국여성들의 에너지 넘치는 활기와 건강미나, 스케일 큰 행동 거지 라던가는 발란신 맘에 들었던 모양.
가져온 대본은 진지하게 상대 안하고, 학생들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수준으로 발레에 맞는 신체로 개선해 나가기 시작.

개교 후, 저녁에 상급반 학생을 대상으로 클래스를 하나 개설했음. 목적은 지금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발레의 기본 스텝 하나하나를 안무가가 어떻게 조합해서 작품으로 바뀌는지, 그 기본 동작의 수행이 클래스와 무대 위의 작품 사이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가르치기 위해서. 학생들이 그 발레 스텝이 어떻게 작품이 되는지 궁금해 했다고.
발란신 생각에 제일 쉬운 방법은 실제로 하나 만들어서 춰 보면서 몸으로 습득하는 거였음.
그리고 실제로 만들어진 작품이 1934년 6월 10일 발표한 세레나데.
세레나데는 그 레슨 진행과 함께 만들어지기 시작.
첫날 출석 인원은 여학생만 17명. 이 어중간한 숫자를 좀 있어보 늘어세운 게 바로 세레나데 오프닝 당시의 배열. (꼭지점하나 공유하는 마름모 둘)
그리고 당연히 클래스는 1번 포지션으로 시작.

이튿날은 9명, 삼일째는 6명, 나중에는 남학생들도 출석하기 시작함.
그날 그날 있는 인원들로 작품을 짜나가면서, 레슨 중 발생했던 해프닝도 안무에 포함.
이전 트윗에도 언급했지만, 무대에서 퇴장하는 시퀀스에서 학생 하나 호되게 넘어져서 울음을 터트렸는데, 발란신은 피아노 연주자에게 계속 연주하라고 지시.
...일으켜서 달랠 생각은 안 하고 말이지. ㅡㅡa;;;
상급반이라곤 해도 레벨도 들쭉날쭉하나보니 좀 잘한다 싶은 학생들 모아서 그룹 안무 주고, 좀 떨어진 다는 애들은 어려운 부분 빼고, 좀 쉽게 추는 부분에 끼워주고...

...주역 원톱은 세울레야 세울 수가 없는 상황이었음.

그리고, (지금도 발레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듯) 당시 학생들에게 발레란 지젤이나, 백조의 호수 정도와 같은 의미.
하지만 발란신은 그 기원은 오래되었을지라도, 발레는 현대에 살아있는 예술이라는 것도 알려주고 싶어했음.

발란신은 레슨 과정에서 만들어낸 안무를 종합하고 다듬어서 하나의 작품으로 다듬기로.
첫 세레나데는 그래서 지금과 달리 솔리스트 역할이 없었음. 군무를 변화무쌍하게 분할하고 합치고, 무대 여기저기를 이동 시키면서 만들어내는 흐름과 패턴, 조형 공간의 활용을 보면, 숙련된 솔리스트의 테크닉이 만들어내는 라인이 아니라 군무 그 자체를 주역처럼 취급.
1935년 컴퍼니용으로 개정 이후에도 수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다른 작품 처럼 원톱을 내세운 적도 있었지만, 뉴욕 시티 발레의 첫 런던 투어 때 즉, 1950년에 발란신은 역시 이 작품은 컴퍼니, 그 자체를 부각시키기 위한 작품이라고, 주역이 아닌 몇몇의 솔리스트 역할로 분할함. 거의 이 시기에 현재 세레나데 안무가 정착했다고 봐도 좋음. (1957년 NYCB 흑백 영상 남아 있는 걸 봐도 현재의 안무와 거의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
프로 컴퍼니용으로 개정했다해도, 세레나데의 본질은 학생들이(그리고 후일의 컴퍼니가) 발레를 습득하면서 함께 발전해온 과정이 고스란히 작품으로 남은 독특한 사례.

군무 안무가 유별나게 빠르고 마스게임과 같이 패턴이 변화무쌍하지만, 그 덕에 학생들의 약점(발란스나 느린 동작에서 나와야 하는 정교한 라인과 안정감)이 크게 드러나는 걸 피할 수 있었다.
비루투오소 적인 면이 강한 러시안 걸 역할은 나중에 그걸 감당할 레벨로 올랐을 때야 추가한 역할.
공개 당시의 학생들의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보여줄 수 있는 최선.
개개인의 테크닉은 정말 딱 기본 동작 위주로 심플하게 사용하는 대신, 음악과 함께 흐르는 듯한 움직임과 역동성을 동시에 드러냄.

다이아몬드에서 볼 수 있는 주역의 완성된 테크닉과 거기서 보이는 정교한 음악성은, 세레나데에서는 군무가 무대 위에서 그리는 패턴과 군무의 움직임이 음악과 동기되는 부분에서 대신 드러남.
학생 개개인은 미완성이라도, 군무를 갈아넣어서 그걸 극복하고 보여줄 수 있는 완성도가 존재함.

이건 라 바야데르의 망령의 왕국 군무 등과는 좀 다른데, 망령의 왕국 군무는 단원들 하나 아라베스크나 데벨로페에서 흔들, 오열이 어긋나면 전체 완성도가 떨어지는데, 세레나데는 쉼없이 흘러가는 군무의 패턴 속에서 그런 약점이 좀 감춰질 수 있는 구조.
하지만 잘하고 못하고는 발레단끼리 비교하면 역시 티가 남.
바꿔 말하면 발레단 특성도 드러나고.
암튼, 정말 주역 한 사람이 하드 캐리할 수 없고, 패턴의 변형을 통해서 흐름과 음악성을 군무가 가져가다보니까, 이 작품 로열석은 2층 정중앙(단호)
물론 세 명의 주요 솔리스트가 있긴 하지만, 이 셋은 사실상 엘레지에서나 서정성 담당하고 대세는 군무임.
...그래서 이번엔 사실 캐스팅 별 신경 안쓰고 2층 앞자리 잡는데 주력했었음. ㅎㅎㅎㅎ;;
사이드도 말고 중앙 블럭. 결과는 만족. 솔직히 중간에 보다가 울 뻔했다. 9년 기다린 끝에 보는 거에다가 어설프게 찍힌 영상이 아닌, 정말 제대로 볼 수 있어서.
쉐이드 군무가 괜찮았기에 연습량만 받쳐 준다면 세레나데는 괜찮을거야.. 라고 생각은 했지만, 트레이너 도착이 늦어진다고 하질 않나... 꽤 조마조마했다.
추측이긴 해도, 네덜란드에서 먼저 겪어본 김지영씨가 있었으니 연습은 어떻게든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녹음인 게 두고두고 아쉽다. 발란신 작품답게 세레나데도 음악과 무용의 싱크가 장난 아닌데, 그걸 밋밋한 녹음으로 듣자니 일단 1/3은 죽이고 들어가는 거라 ㅜ.ㅜ
(그렇다고 무용수들 맞출 생각 없는 모 얀씨 데려오면 더 재앙이었겠지만)
TIMF 앙상블이나 세종 솔로이스츠나 하여간 괜찮은 현악 앙상블이랑 콜라보 안 되나요. ㅜ.ㅜ 엘지 오케 피에도 다 들어간다고.
갈라도 아닌 정기 공연에서 발란신을 녹음으로 하는 법이 어딨어!!!!! ㅜ.ㅜ

고만 울고, 다시 작품 얘기로 돌아와서, 만들고 나서 곧 레퍼토리에서 사라지기도 했던 다른 작품과 달리, 발란신은 세레나데에 특정 요소를 추가하거나 제거하거나 혹은 수정하거나 역을 확장시키거나 하면서 계속 개정 작업을 해 나갔다.

완성하고 나서 레퍼토리에서 곧 제외되어 잊혀진 작품도 있던 거에 비하면, 이 작품이 그만큼 발란신에게 특별했단 뜻 아닐까.
역시나 버나드 테이퍼의 증언에 따르면, 1959년 공연 후 발란신에게 공연 훌륭했다고 전하자, 그가 대답하길

"응, 25년 전에 만든 작품인데도 지금 봐도 나쁘지 않았어. 발레로선 꽤 잘 버티는 편이지."

내 개인적으로 버티는 편인 정도가 아니라 영상을 그리 많이 돌려봤는데도 이번에 본 무대가 전혀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외려 정신들고 보니까 끝나 있더라.
음악도 안무도 모두 사람을 홀려서 괜히 인기있는 레퍼토리가 아니었구만 하는 실감을 했달까.

아직 NYCB가 거칠었던 무렵의 영상으로도 보기 힘들다라는 느낌 못 받았고, 마린스키의 경우는 그 낭창낭창한 폴 드 브라랑 정말 복사해서 붙인 듯한 군무진의 고른 체형에서 나오는 정돈된 느낌이 좋았었다.
볼쇼이는 그냥 군무 전체가 같이 날고. ㅎㅎㅎㅎ
국발의 경우는 비교적 깔끔했다는 인상이 남는다. 다 똑같이 검은 머리가 푸른 빛 도는 의상이랑 뚜렷이 대비가 되는데, 그게 참 산뜻했다고나 할까.
어차피 이번엔 실수도 있어서 아쉬웠고 하니, 앙상블이랑 맞춘 100% 다 채운 공연으로 다시 봤음 한다

참, 아직 말 못한 게 더 있네.
1934년 저 열악한 여건 - 훈련된 무용수도 극장도 없던 - 에서 세레나데 주요 안무는 다 튀어나왔음.
이 아저씨가 정말 무서운 게, 일단 일 해야 하면 있는 상황에서 결과물을 빠르게 뽑아내는데, 그게 평균 이상.
사실, 세레나데는 초연 때 평론가들한텐 좋은 소리 못 들었음. 패턴은 흥미로운 데 무용수 레벨은 떨어진다거나(당연하잖아!! 이제 시작했는데) 이라고. 미국적이지 않다거나. ( = 한국적 발레 운운 = 아무도 그게 뭔지 정확히 모름)

학교에서 무용수들 계속 훈련시키면서 결국 돈은 딴 데서 버는데,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영화.
뮤지컬에서 토니상 챙겨갔고 (On Your Toes), 영화 Goldwin Folies 에선 거쉰 음악에 안무.
https://t.co/yT3glF1Epn

이 춤은 나중에 월트 디즈니의 판타지아에서 패러디 될 정도.
저 영화 작업할 땐 사실, 카메라의 시점에 착안을 해서 카메라 워킹을 최대한 살리는 안무를 시도하려 했는데, 카메라 여기저기 이동시키고 지시하는 걸 감독이 브레이크 걸어서 못했음.
헐리우드와 함께 작업하면서 돈도 좀 벌고, 호평도 받다보니, "미스터 발란신은 발레엔 재능 없어보임." 이란 정신나간 평도 올라오긴 했었지만, 발레단 기반이 마련되고 나서 한풀이 하듯 쏟아낸 작품 보면 ㄷ ㄷ ㄷ

의외로 생계형인 면도 있었다는 얘기.
(돈 궁하면 생계형 커미션 엽니다) 문제는 그렇게 번 돈 쓰는 것도 참 호탕하게 써서;;
힌데미트가 작곡한 네 개의 기질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헐리웃에서 번 돈으로 집 사고, 차 사고, 그랜드 피아노 두 대 등 쓸 거 다 쓰고도 남아도니까, 힌데미트한테 취미로 나 혼자 듣고 칠 곡 하나 써달라하면 돈 얼마나 들까.. 라는 호기심에 의뢰했던 것.
작품에 대한 태도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이 아저씨는 진짜 지금 살고 있는 그 순간이 전부인 것 처럼 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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