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와댄서

스파르타쿠스
2010. 7. 31 토요일 오후 7시 30분.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

작곡: Aram Khachaturian
안무: Yuri Grigorovich
지휘: Pavel Sorokin

스파르타쿠스: Ivan Vasiliev
크라수스: Alexander Volchkov
프리기아: Nina Kaptsova
Aegina: Maria Allash

일단 한줄 요약: 바실리에프 팽이군에서 팽이님으로 승격하다.

바실리에프가 테크닉 뿐만이 아닌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무용수 - 발레리노 - 라는 걸 깨달았고. 진짜 세대교체가 일어났구나~ 라는 실감도 함께 했다.
정말 이 날 바실리에프는 뭔가 씌인 것 같았다. 억 소리나는 테크닉은 정말 공연 끝나고 바닥에 떨어진 턱 찾고 싶은 심정이 될 정도였지만, 그 이상으로 그 엄청난 테크닉이 음악과 따로 놀지 않았다는 점(오시포바를 정말정말정말 사랑하지만 내내 아쉬운 점이 이거임 ㅜ.ㅜ). 그리고 역 자체에 굉장히 몰입해 있었던  연기 등의 표현력을 오히려 더 높게 쳐주고 싶다.
그리고, 아마도 블라디미르 바실리에프 - 이렉 무하메도프를 뒤를 이어 정말 간만에 대형 스파르타쿠스가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양 손목에 사슬을 감은 상태에서 추는 첫 모놀로그. 바실리에프나 무하메도프의 영상과 비교했을 때와 비교하면 고전적인 틀에서는 더 벗어난 느낌이다. 안 그래도 로마 쪽의 춤이 고전발레의 아카데믹한 스타일이라면 반란군 쪽은 모던 발레의 느낌이 강한데, 그게 더 한층 강화되고, 전형적인 발레의 라인을 더 벗어나서 감정의 기복을 더 거칠게 강하게 나타낸 느낌이 강했다. 구속을 상징하는 쇠사슬에 얽매인 절망과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에 가까운 춤이 첫장면부터 사람을 몰입하게 만들더라.
바실리에프의 스파르타쿠스는 춤 자체에 감정을 강하게 실었는데, 이게 그의 경이로운 테크닉과 결함해서 갈수록 엄청난 무대를 보여준다. 노예로 잡혀서 검투사로 팔려가고 결국은 동료를 자신의 손으로 살해하고.
살해한 상대의 투구를 벗겨내고 동포임을 확인한 순간에 바닥을 짚은 부들부들 떨리는 양손. 그리고 뒤이어 폭발하는 분노는 그 전 모놀로그에서 보여줬던 것보다 한층 더 강한 춤으로 폭발하더라. 사실 그 앞에도 테크닉 후덜덜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진짜는 그 때부터였다.
....동지들과 반란군을 결성하고 탈출하면서 무대를 가로지르면서 연이어 보여주는 커다란 도약에서는 1막의 클라이맥스를 보여준다. 그 어마어마한 도약이 보여주는 해방감이 바로 그 순간 스파르타쿠스 자체로 보여서 굉장히 좋았다. 
1막과 2막에 걸쳐 반란의 초기 성공에서 보여주는 승리. 막판에 투르 알 라 스공드 (다리 옆으로 일직선으로 올려서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회전)는.... 젠장, 인간이냐 저거? 회전축 콘트롤이 무시무시해. 농담 아니고, 한바퀴 돌고 한바퀴는 다리를 뒤로 뻗는 아라베스크 자세로 변형시키고 가슴과 상체를 전방으로 한껏 펼친 채로 돌다가 다시 자세 변환. 단순히 테크닉의 어려움을 제쳐두고 그렇게 변형된 자세가 굉장히 시원하고 뻗는 느낌을 주는지. 단순히 테크닉 자랑이 아니라, 승리의 포효(..좀 거창한 표현이긴 해도)라는 느낌이 들었다.
절망으로 내리닫기 시작하는 3막에 초반에 살짝 억눌렀다 싶었더니, 마지막 최후의 전투와 죽음까지 가는 장면에서 다시 한 번 폭발.

늘상 이반 바실리에프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그 테크닉 자체에 감탄했었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물론 처음 본 전막도 전막이었지만, 그게 스파르타쿠스였다는 거. 드라마성이 강한 그 이야기에서 굉장히 강하고 견고한 중심축을 확실히 잡아준다. 
비록 체구는 작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공연 내내 그런 인상을 받지 못했다. 무대에서의 압도적인 존재감, 에너지, 생동감. 그리고 캐릭터와의 일체. 그리고 그 엄청난 테크닉이 음악과 그리고 드라마의 흐름에 잘 맞춰서 조절이 된다. (....물론 설설 해도 ㅡㅡ; 이거는 뭐 이미 사기캐)
체구가 작은 남성 무용수 중에서 테크닉이 뛰어난 사람은 몇몇 있었다. (ABT 의 코르네호라던가 다닐 심킨이라던가) 그렇지만 항상 존재감이나 카리스마, 표현력에서 아쉬움을 느낀 적이 적지 않았는데, 이번에 스파르타쿠스를, 그 혼자 추는 모놀로그로 무대를 꽉 채울 수 있는 존재감을 지닌 무용수가 나왔다는 데에 박수를.

볼쇼이는 또 한 명의 엄청난 스파르타쿠스를 맞이한 셈이다.

+ 리프트가 제대로 된다!!! 나 솔직히 엄청 걱정했다고, 유리 할아버지 스파르타쿠스 리프트가 좀 험해야지.
그치만 기우였음. 2막과 3막의 파 드 두에서의 그 고난이도 리프트 의식도 못할 정도로 깔끔하게 클리어.
니나 캅쵸바와의 호흡도 굉장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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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에프 찬양은 이 쯤하고.. 헴헴
볼치코프의 크라수스도 좋았다.
바실리에프의 거친 화강암 같은 스파르타쿠스와 달리, 춤이 정통 클래식. 굉장히 정리가 잘된 선에 각잡힌 모습을 보여준다. 리에파의 카리스마에 미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귀족적인 모습이었음.

니나 캅초바의 프리기아.
보통 리리컬 쪽으로 분류될텐데, 이 날은 베스메르트노바보다는 세메냐카의 프리기아가 생각났음.
역시 체구는 작지만 굉장히 심지가 굳은 외유내강한 프리기아를 보여줬다. 언급했다시피 바실리에프의 호흡은 나무랄 데 없었고.

마리아 알라쉬의 예기나.
지난 번 국립 때도 객원으로 예기나를 춘 적이 있어서 이후 두 번째로 보게 되었는데, 엄마야!! 이 아가씩 색기라는 걸 배웠어!!! 완전 파워 업으로 춤의 느낌이 바뀌어서 깜짝 놀랐다. 굉장히 요염했다. 그러면서도 그 색기라는 게 천한 느낌이 아니고, 완전히 영리하게 자기가 챙길 거 다 챙기고 크라수스의 정부이면서 단순한 정부가 아니라 비즈니스 파트너 라는 지성적인 느낌도 같이 풍긴다는 게 신기했음. 정말 요염하다는 느낌은 이제까지 봤던 예기나 중에서 최고.

마지막으로 , 역시 스파르타쿠스는 볼쇼이를 위한 작품이었다. 그 역동성과 스케일은 역시 볼쇼이 스타일.
영상물로야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까 본가는 넘사벽이었음. 정말 누구 한 명 빠질세라 날라다니는 솔리스트들과 남성 군무진의 박력은 압도적이었다.
연주 역시 박력 만빵.

......유리 할아버진 천재 맞다. 내가 좋아하는 몇몇 무용수들 물 먹인 것 땜에 미워할려고 해도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이미 깔 수가 없어.. OTL

+ 여긴 커튼 콜 때는 사진 찍어도 되나 봄. 이날 전체가 스탠딩 오베이션.